AHA나 BHA 같은 산을 쓰는 날에는 나이아신아마이드를 빼라거나, 발랐다면 20~30분은 기다리라는 말,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산이 나이아신아마이드를 '나이아신'으로 바꿔 얼굴이 붉어지고, 서로의 pH가 어긋나 둘 다 효과가 사라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두 이야기는 뿌리가 다릅니다. 얼굴이 붉어진다는 말은 60여 년 전 실험실의 가열 실험에서 나왔고, 효과가 사라진다는 말은, 피부가 스스로 산도를 되돌리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게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어디서 왔을까요
나이아신아마이드(비타민 B3의 한 형태)는 조건에 따라 '나이아신'(니코틴산)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이 반응을 처음으로 자세히 측정한 연구가 1962년에 나왔습니다 (Finholt & Higuchi, 1962). 연구진은 반응 속도를 측정하려고 용액을 높은 온도로 가열해야 했습니다. 상온에서는 변화가 너무 느려 재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이 전환은 평소 온도에서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 전환은 약산성에서 중성 사이, 곧 피부와 스킨케어가 머무는 pH에서 가장 느립니다. 아주 강한 산성이나 알칼리성에서, 그것도 높은 온도로 오래 끓여야 비로소 빨라집니다. ‘산과 만나면 나이아신아마이드가 나이아신으로 바뀐다’는 말도 여기서 나왔겠지만, 정작 그런 조건은 세면대가 아니라 실험실에서나 만들어집니다.

실제 피부 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나요
피부에 바른 제품은 체온과 비슷한 온도이고, 다음 제품을 덧바르기까지도 몇 분이면 됩니다. 산을 먼저 발라 그 자리의 pH가 잠시 낮아지더라도, 스킨케어용 산은 보통 pH 3~4 수준이고 닿아 있는 시간도 짧습니다. 가열 실험이 보여 준 '고온·장시간·극단적 pH'와는 거리가 멉니다. 일상적인 사용에서는 의미 있는 양이 전환되지 않습니다.
나이아신아마이드 자체도 생각보다 튼튼합니다. 앞서 봤듯 약산성에서는 좀처럼 바뀌지 않고, 피부에도 순하게 작용하는 성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Wohlrab & Kreft, 2014). 5% 농도로 12주간 바른 임상에서는 잡티와 붉은기, 잔주름까지 함께 옅어졌습니다 (Bissett et al., 2005). 잠깐 산과 닿았다고 무너지는 성분이 아닙니다.
산도 마찬가지입니다. AHA·BHA는 pH가 낮을 때 '유리산' 형태가 늘며 작용하는데 (Kornhauser et al., 2010), 위에 나이아신아마이드를 올린다고 그 작용이 꺼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피부는 본래 평균 pH 5 미만의 약산성 막을 두르고 있고, 잠시 흐트러져도 스스로 약산성으로 돌아옵니다 (Lambers et al., 2006). 한쪽이 다른 쪽을 ‘없앤다’는 말은 실제 피부에서는 맞지 않습니다.
그럼 '나이아신 홍조'는 어떻게 된 걸까요
얼굴이 붉어진다는 걱정의 정체는 '나이아신 홍조(flush)'입니다. 니코틴산이 혈관을 넓히며 생기는 실제 반응이 맞지만, 보통 수백 밀리그램을 먹었을 때 나타납니다. 피부 위에서 혹시 만들어질 수 있는 미량과는 자릿수가 다른 양입니다. 게다가 앞서 보았듯이 그 미량조차 일상 사용에서는 거의 생기지 않습니다.
물론 산을 바른 직후 나이아신아마이드를 곧바로 겹쳐 올리면 따끔하거나 화끈한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성분이 '나이아신으로 바뀌어서'가 아니라, 한 번에 여러 활성을 올렸을 때 흔한 일시적 자극입니다. 잠시 뒤 가라앉고, 피부에 해를 남기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같이 쓸 때 진짜 주의할 점은 뭘까요
두 성분이 서로를 망친다는 걱정은 내려놓아도 됩니다. 정작 살펴야 할 것은 '충돌'이 아니라 한꺼번에 너무 많이 올리는 일입니다. 강한 활성을 여러 개 겹치면 그만큼 피부 장벽이 받는 부담도 커집니다. 여러 활성을 한 번에 겹칠 때 어떤 신호가 나타나는지는 세럼 충돌 자가진단에서 따로 다룹니다. 나이아신아마이드는 오히려 장벽을 보호한다고 알려져 있어, 산성 성분과 함께 쓸 때 균형을 잡아 주기도 합니다 (Wohlrab & Kreft, 2014).
흔히 ‘산을 바르고 20~30분은 기다렸다가 나이아신아마이드를 올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피부는 잠깐 흔들린 산도를 스스로 되돌리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오래 기다릴 이유는 없습니다. 피부가 예민해 따가움이 신경 쓰인다면 산을 바른 뒤 1~2분 두거나 두 성분을 아침·저녁으로 나눠도 됩니다. 서로를 망가뜨려서가 아니라, 그저 더 편안하기 위해서입니다.
두려움은 칸을 늘리고, 과학은 칸을 줄입니다
‘같이 쓰면 안 된다’는 말은 조용히 자꾸 무언가를 더하게 만듭니다. 성분마다 시간을 쪼개고, 병을 따로 사 모으고, 루틴은 점점 복잡해집니다. 그러나 과학이 가리키는 방향은 오히려 반대입니다. 애초에 갈라놓을 필요가 없는 조합을 갈라놓느라 단계를 늘릴 이유가 없습니다. 필요한 활성만 정확한 pH로 함께 담는 까닭은 활성 성분을 한 병에 담는 이유에서 더 풀었습니다.
피부에는 이미 제 산도로 돌아오는 힘이 있고, 좋은 케어는 그 결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필요한 활성만 정확히 더하는 일입니다. 미신을 한 칸 덜어내면, 루틴도 한 칸 가벼워집니다. 더할수록 나빠진다는 말은, 여기서는 '두려움을 더할수록 복잡해진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오늘 해볼 수 있는 것
한 번에 다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작은 것부터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 산성 제품을 쓰는 날 나이아신아마이드를 굳이 빼지 않아도 됩니다.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면 산성 성분을 바른 뒤 1~2분 두었다가 올려 보세요.
- 발랐을 때 따갑다면, 충돌의 증거로 받아들이기보다 활성을 하나 덜어내 보세요. 보통은 가짓수의 문제입니다.
- 새 조합은 한 번에 하나씩, 며칠 동안 피부의 반응을 지켜보며 들여 보세요.
오늘 당신이 루틴에 한 일은, 두려움을 따라 한 칸을 늘리는 일이었을까요, 필요 없는 한 칸을 덜어내는 일이었을까요.
자주 묻는 질문
참고 문헌
- Finholt, P., & Higuchi, T. (1962). "Rate studies on the hydrolysis of niacinamide." Journal of Pharmaceutical Sciences, 51, 655–661.
- Wohlrab, J., & Kreft, D. (2014). "Niacinamide – mechanisms of action and its topical use in dermatology." Skin Pharmacology and Physiology, 27(6), 311–315.
- Bissett, D. L., Oblong, J. E., & Berge, C. A. (2005). "Niacinamide: A B vitamin that improves aging facial skin appearance." Dermatologic Surgery, 31(7 Pt 2), 860–865.
- Kornhauser, A., Coelho, S. G., & Hearing, V. J. (2010). "Applications of hydroxy acids: classification, mechanisms, and photoactivity." Clinical, Cosmetic and Investigational Dermatology, 3, 135–142.
- Lambers, H., Piessens, S., Bloem, A., Pronk, H., & Finkel, P. (2006). "Natural skin surface pH is on average below 5, which is beneficial for its resident flora." International Journal of Cosmetic Science, 28(5), 359–370.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의학적 진단·치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